유럽갈 때 '코로나 면역여권' 챙기는 시대 오나

입력 2020-05-26 17:25   수정 2020-05-27 01:02

다음달 15일부터 외국인 관광객 입국을 허용하는 그리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음성 판정을 입증하는 전자문서인 이른바 ‘면역 여권(건강 여권)’을 지닌 여행자에 한해 입국을 허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행객은 입국하기 전 체온을 측정하고 스마트폰에 저장된 면역 여권도 제시해야 한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면역 여권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매슈 행콕 영국 보건부 장관은 지난주 “코로나19 항체 형성이 확인된 사람에게 증명서 발급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면역 여권’ 개발 경쟁

영국 정부는 이미 다양한 스타트업과 면역 여권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선두주자로는 옥스퍼드대 졸업생 세 명이 2012년 설립한 디지털 신분증(ID) 스타트업 온피도가 꼽힌다. 이 회사는 지난달 1억달러 규모의 투자금도 유치했다.

후세인 카사이 온피도 최고경영자(CEO)는 “면역 여권 부정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사진 ID를 스캔한 뒤 영상 형태의 실제 생체 이미지와 비교하는 기술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요티는 면역 여권을 사용할 때 다른 사람 코드를 도용하거나 허위 스크린샷을 이용하지 못하게 ‘1회용 QR 코드’와 ‘디지털 홀로그램’ 등을 활용할 계획이다. 요티는 영국 정부뿐만 아니라 여러 스포츠 구단, 항공사 등과도 코로나19 면역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ID 개발을 협의 중이다.

영국 맨체스터에 본사를 둔 VST엔터프라이즈는 ‘V-헬스 여권’이라는 건강 여권 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사 측은 경쟁사 제품보다 더 먼 거리에서 여권을 스캔할 수 있어 ‘사회적 거리’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제라드 프랭클린 홍보담당은 “영국 정부와 (여권 개발과 관련해)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염자 추적 앱 도입도

유럽연합(EU)은 이날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추적해 여행객에게 경고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마련하라고 회원국들에 주문했다. 스텔라 키리아키데스 EU 보건담당 집행위원은 “국경을 넘나들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접촉을 추적해야 한다”며 “시민들이 EU 어디에 있든, 어떤 앱을 이용하든 감염 가능성을 경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제안은 여행 성수기를 앞두고 EU 27개 회원국이 코로나19 탓에 봉쇄한 국경을 여는 방안을 논의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받은 EU 회원국은 경제 활동을 안전하게 재개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은 지난 20일부터 코로나19 환자를 추적할 수 있는 앱 서비스를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추적 앱은 스마트폰에 내장한 블루투스를 활용해 감염자의 위치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도 이 추적 앱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감염자 추적 앱과 면역 여권 등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논란도 커지고 있다. 국제 비영리단체인 유럽디지털권리(EDRi)의 엘라 자쿠보스카 정책담당은 “대규모 보안 감시 인프라가 구축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가 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 데이터가 사용될지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완치돼 항체를 보유한 사람들이 확실한 면역력을 지닌다는 증거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같은 이유로 면역 여권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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